<로마의 휴일>(1953), <브레이브 원>(1956)으로 아카데미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지만 정작 트로피는 1993년에야 받을 수 있었던 작가가 있었답니다. 11개의 이름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겨야 했던 달튼 트럼보(브라이언 크랜스톤)입니다.
전후 미국을 뒤흔든 매카시즘 속에서 작품 활동을 금지당한 작가로서 트럼보가 어쩔 수 없이 택한 방법이었습니다. 여기까지만 들어도 우리의 호기심을 끌기 충분한 트럼보라는 인물은 단지 영화 속 인물이 아닙니다.
<트럼보>의 트럼보는 실존 인물이며 이 영화는 그의 실화에 바탕했습니다. 13년간 작품 활동이 금지된 작가가 어떻게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며 세상과 맞섰는지를 풀어갑니다. 한 인물을 통해 당대 미국 사회의 반공주의와 할리우드의 상황이 드러났습니다.
달튼 트럼보의 드라마 같은 삶, 역경 속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은 한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습니다. 미국 드라마 <브레이킹 배드>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네 번이나 받은 연기파 배우 브라이언 크랜스톤이 달튼 트럼보를 완벽하게 연기했습니다. 때론 신경질적이고 냉소적인, 때론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작가 트럼보, 인간 트럼보를 구현합니다.
참고로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존 맥나마라는 트럼보의 절친한 친구이자 트럼보가 활동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이름을 빌려준 이안 맥켈란 헌터에게 글 쓰기를 배우며 이 실화를 들었답니다. 트럼보가 재능 넘치는 작가일 뿐 아니라 정치 운동가, 시대의 반항아, 동시에 자식을 사랑한 평범한 아버지라는 점을 상기하며 존은 다채로운 인물로서의 트럼보를 각본으로 써내려간 것입니다.
주연인 브라이언 크랜스톤의 연기를 보는 건 즐거운데 더불어 할리우드 황금기인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만큼 당대 스타들을 재현한 것 또한 볼거리입니다. 딘 오고먼은 당시 최고의 배우이자 제작자이며 마이클 더글라스의 아버지인 커크 더글라스를 소화했습니다. 커크 더글라스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트럼보에게 <스파르타쿠스>의 각본을 맡기며 재기를 독려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답니다.
데이빗 제임스 엘리엇은 트럼보가 블랙리스트에 오르는데 영향을 끼친 배우 존 웨인을, 마이클 스털버그는 급진주의적 성향으로 트럼보와 친분을 맺었으나 결국 배신을 택한 배우 에드워드 G. 로빈슨을 연기합니다. 그 시절의 스타들의 재현 못지않게 <트럼보>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전 영화들의 흥미로운 탄생 비화를 들려줍니다.